세계 5대 갯벌과 서해안 갯벌의 가치
1. 들어가며
갯벌은 단순히 바닷가에 펼쳐진 진흙밭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갯벌이 농지 확장이나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간척 대상지로만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생태적·문화적·경제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보전과 복원(역간척)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5대 갯벌”로 흔히 언급되는 지역들은 그 규모와 생물다양성, 조수 간만의 차, 문화·관광 자원 측면에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전해야 할 중요한 자연자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 갯벌 또한 이러한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불리며, 2021년에는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 중 일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간척사업으로 인해 갯벌 면적이 크게 줄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역간척’을 통한 복원 움직임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블루카본(blue carbon) 기능 등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계 5대 갯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 그 가운데 한국 서해안 갯벌의 특징과 역간척 사례, 그리고 해외의 갯벌 복원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또한 갯벌이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갯벌 복원이 중요한지까지 종합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2. “세계 5대 갯벌”이란?
많은 분들이 “서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세계 5대 갯벌’이라는 표현은 국제기구나 학계가 공식적으로 선정한 ‘고정된 목록’은 아닙니다. 보통 아래와 같은 지역들이 대규모 갯벌, 생태적 가치, 조수 간만의 차가 큰 해안 등 여러 측면에서 ‘세계 5대 갯벌’로 자주 꼽히는 곳들입니다.
- 한국 서해안 갯벌(대한민국)
- 와덴해(Wadden Sea)
- 몽생미셸 만(Baie du Mont-Saint-Michel)
- 펀디만(Bay of Fundy)
- 기타 후보(아마존 하구, 쿠크만, 순다르반스 등)
선정 기준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목록에는 프랑스 북부의 몽생미셸이 포함되고, 어떤 목록에는 브라질 아마존 하구나 방글라데시-인도 국경 지역의 순다르반스(Sundarbans)가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한국의 서해안 갯벌은 면적, 생물다양성, 철새 도래지로서의 중요성, 조수 간만의 차 등 여러 측면에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어 “세계 5대 갯벌”이라는 타이틀로 자주 소개됩니다.
3. 한국 서해안 갯벌: 세계적 가치
3-1. 서해안 갯벌의 특징
- 광활한 면적과 큰 조차
서해(황해)는 조수 간만의 차(조차)가 매우 큰 해역으로, 썰물 때는 드넓은 뻘밭이 드러나고 밀물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수심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 때문에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복합 생태계가 형성되었습니다. - 생물다양성의 보고
서해안 갯벌에는 조개, 게, 소라, 낙지 등 다양한 저서생물이 풍부하며, 철새들이 먹이와 서식지를 찾아 해마다 수백만 마리가 이곳을 찾습니다. 2021년에는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 중 신안·보성-순천·고창·서천 등 4개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국제적 보전 가치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습니다. - 지역 주민과의 상생
예로부터 갯벌은 어민과 주민의 생계터 역할을 해왔습니다. 바지락, 굴, 조개 등 해산물을 채취·양식하는 전통 방식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고, 갯벌 체험 관광이나 어촌 문화 등으로 지역 경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3-2. 간척사업과 갯벌의 훼손
- 간척의 역사
1970~80년대, 우리나라는 식량 증산과 공업용 부지 확보를 위해 서해안을 중심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을 펼쳤습니다. 서해안이 조차가 크고 해안선이 완만해 간척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 갯벌 면적의 감소
이러한 간척사업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많은 갯벌이 매립·소실되었습니다. 그 결과, 생태계 파괴와 수산 자원 감소, 연안 침식, 수질 오염 문제 등이 대두되었습니다. - 갯벌 가치의 재발견
그러나 갯벌이 지닌 생태적·경제적·문화적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이미 간척된 부지를 다시 바다와 연결해 갯벌을 되살리는 “역간척” 혹은 “갯벌 복원” 사업이 관심을 받게 됩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연안습지 복원과 해양 생태계 보전을 강조하며, 해당 지역 주민들과 협의해 갯벌 복원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4. 세계 주요 갯벌 소개
4-1. 와덴해(Wadden Sea)
위치: 북해(North Sea) 연안, 네덜란드-독일-덴마크에 걸쳐 있음
특징: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연속적인 모래·진흙 갯벌 중 하나로 꼽힙니다. 철새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동·중간 기착하는 곳이며, 생태학적 가치가 뛰어나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3개 국가가 국경을 넘어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해양 보호구역과 관광 자원으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4-2. 몽생미셸 만(Baie du Mont-Saint-Michel)
위치: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지역
특징: 유럽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조차가 큰 만으로, 밀물 때는 몽생미셸 수도원이 마치 섬처럼 보입니다. 1979년, 몽생미셸 수도원과 주변 갯벌·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매일 바닷물이 들고 나가는 속도가 빨라, 관광객들은 일몰이나 일출 시기에 특히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4-3. 펀디만(Bay of Fundy)
위치: 캐나다 동부, 뉴브런즈윅·노바스코샤 주 사이
특징: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조수 간만의 차 중 하나로 유명하며, 최대 15~20m까지 차이가 납니다. 썰물 때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데, 밀물 시에는 파도가 빠르게 올라와 거대한 차이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해양생물들이 풍부해 고래관찰 등 생태관광 자원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4-4. 그 외 대표 갯벌 후보들
- 아마존 하구(브라질)
갯벌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강 하구(삼각주)에 가까우나, 막대한 기수역 습지를 이룹니다. - 쿠크만(Cook Inlet, 미국 알래스카)
알래스카 남부에 위치, 조차가 매우 커 썰물 시 드러나는 갯벌 면적이 상당합니다. - 순다르반스(Sundarbans, 방글라데시·인도)
세계 최대 면적의 맹그로브 숲 지대이며, 갯벌 생태와 맹그로브 숲이 혼재해 독특한 환경을 형성합니다.
5. 역간척: 갯벌 복원의 중요성
과거에는 바다를 막아 땅을 넓히는 “간척(reclamation)”을 국가 발전의 핵심 정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갯벌 파괴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인식하면서, 이미 간척된 부지를 다시 바다와 연결해 원래의 갯벌 상태로 복원하려는 “역간척(逆干拓)”이 세계적인 추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5-1. 한국 서해안의 역간척 사례
- 시화호 일부 복원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며 만들어진 인공 담수호 시화호는, 초기 수질 오염이 심각했습니다.
정부는 결국 해수 유통을 허용해 염분을 조절하고, 점진적으로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방안을 택했습니다.
완전한 갯벌 복원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담수 상태에서 기수역(민물+바닷물)으로 전환하면서 수질이 개선되고 일부 갯벌 기능이 살아났습니다. - 전남·충남 일부 지역 복원 시도
전남 영광, 무안 등지에서는 염해로 농지 활용도가 떨어진 곳이 있습니다.
해양수산부·환경부 주도로 “연안습지 복원 사업”을 실시해 제방 해체 혹은 수문 개방을 통해 바닷물을 다시 들이게 하고, 생태계를 자연스레 복원하는 방식을 추진 중입니다.
철새도래지, 수산물 산란·서식지 복원 등 다양한 긍정 효과가 기대됩니다. - 소규모 복원 움직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갯벌 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작은 단위의 역간척·복원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5-2. 해외의 역간척 및 습지 복원 사례
- 영국 월라시아섬(Wallasea Island) 프로젝트
잉글랜드 동부 에식스(Essex) 지역에서 왕립조류보호협회(RSPB)가 추진 중인 대규모 해안 습지 복원 사업입니다.
제방 일부를 제거하거나 뒤로 옮겨 해수면과 연결, 갯벌·염습지가 되살아나며 철새 서식지가 크게 늘었습니다. - 네덜란드 “Room for the River” 사업
홍수 방지와 하구 습지 복원을 위해, 강 제방을 높이는 대신 뒤로 물려둔 공간을 확보하여 강이 범람 시 자연스럽게 물을 흡수하도록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해안 습지 역시 과거 간척으로 사라진 곳들을 복원함으로써 해양생태계와 홍수 방어 능력을 동시에 개선하고 있습니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 염전 복원
과거 소금 채취를 위해 만든 염전을 매입해 바닷물을 다시 흐르게 함으로써 염습지·갯벌을 되살리는 사업입니다.
저서생물과 철새가 돌아오고, 자연 방파제(습지)가 도시를 홍수와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와덴해(네덜란드·독일·덴마크) 복원
이미 세계 최대 갯벌 중 하나로 상당 부분 보전되어 있지만, 간척된 일부 구역에 대해 해수 유통을 일부 허용하는 등 복원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철새 이동 경로 유지와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해 세 나라가 공동 관리 기구를 통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6. 갯벌과 기후변화: 블루카본(Blue Carbon) 기능
오늘날 가장 큰 전 지구적 이슈 중 하나는 ‘기후변화’입니다. 갯벌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두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6-1. 기후변화 완화: 탄소 흡수·저장
- 블루카본(Blue Carbon)이란?
해양·연안 생태계(잘피숲, 맹그로브 숲, 염습지, 갯벌 등)가 흡수·저장하는 탄소를 일컬으며, 육상 숲(그린 카본)에 대비해 ‘블루(Blue) 카본’으로 부릅니다.
갯벌은 유기물이 쌓이는 퇴적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장기간 대기 중 탄소를 땅속에 격리하는 기능이 탁월합니다. - 탄소 배출 저감 효과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일부를 갯벌에서 흡수·저장함으로써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산림 복원뿐 아니라 해양·연안 생태계 복원을 통한 탄소상쇄(Offset) 방안을 적극 논의하고 있습니다.
6-2. 기후변화 적응: 자연 방재 및 생태계 서비스
- 해안 재해 완충
갯벌은 파도 에너지를 흡수·완충해 해안 침식과 홍수 피해를 줄이는 ‘자연 방어막’ 역할을 합니다.
폭풍해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를 어느 정도 흡수하거나 파고를 낮추는 기능이 있습니다. - 생물다양성 보전
풍부한 저서생물과 철새, 어류 등이 어우러져 복합 생태계를 이루고 있으며, 생태계가 건강할수록 기후변화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도 높아집니다. - 수질 정화
갯벌은 각종 유기물과 영양염류를 흡착·분해해 인근 바다의 부영양화를 방지합니다.
이로 인해 해양 생태계 전체가 더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 지역 사회·문화 유지
갯벌에 기반한 어업, 해산물 채취, 생태관광은 기후변화 시에도 비교적 지속 가능한 생계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갯벌 문화를 지키는 것은 곧 지역 전통과 역사, 정체성을 보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7. 결론: 갯벌 보전과 복원, 선택이 아닌 필수
과거와 달라진 시선
한때는 국가 발전을 위해 바다를 막고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이 ‘진보’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갯벌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땅을 넓히는 것보다, 건강한 해안 생태계를 유지하는 편이 경제·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역간척의 과제와 미래
이미 농지나 산업단지로 활용 중인 구역을 다시 바닷물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 조율, 경제적 보상, 대체 부지 마련 등 복합적인 이슈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양수산부·환경부·지자체·시민단체가 협력해 해안을 복원하고, 갯벌의 생태서비스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위기와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국제사회는 ‘자연 기반 해법(NBS)’을 통해 기후위를 완화하고 적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갯벌 보전과 복원은 그 대표적 실천 사례로, 탄소를 흡수하고 해안 재해를 완화하며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다중적 효과를 발휘합니다.
결국, 갯벌은 ‘바닷가의 펄밭’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 온 삶의 터전이자,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공간입니다. 한국 서해안 갯벌이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앞으로도 갯벌 복원과 역간척 사례는 점차 늘어나면서 그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킬 것입니다.
8.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 해양수산부/환경부 ‘연안습지 복원사업’ 공식 웹사이트
국내 갯벌 복원과 역간척 추진 사례, 지원 정책 등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RSPB (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 월라시아섬 프로젝트
영국 해안 습지 복원의 대표 사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UNESCO World Heritage Center)
한국의 갯벌 등재 자료, 와덴해, 몽생미셸 만의 세계유산 정보 등 참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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